허송세월
“이 모자 얼마예요?”
“2만 1,000원입니다”
“(1,000원은 또 뭐야?) 교복은요?”
“남자는 10만 5,000원이고, 여자는 9만 5,000원이요”
“교련복은요?”
“4만 5,000원인데요?”
“도장도 새겨요?”
“원래 도장 파던 사람입니다”
“맞다! 전에 황학동에서 뵌 적 있어요”
“그때를 기억하세요?”
“그럼요? 한 군데밖에 없었는데요”
“일루 와서는 옛날 교복도 취급하기 시작했답니다”
“잘 됩니까?”
“그럭저럭이요”
“도장 하나 새기는데 얼마예요?”
“만 원짜리부터 아주 비싼 것도 있지요? 1,000원짜리도 있어요”
“이게 만 원인가요?”
“네! 벼락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겁니다”
“진짜 벼락맞았어요?”
“그러니까~ 실제로 벼락 맞은 것은 아주 비싼 거구요, 가공해서 벼락 맞은 것처럼 만든 거지요”
“아~ 그렇군요?’
황학동 시절에 가보고 서울 풍물시장으로 옮기고 나서는 처음으로 가 봤습니다.
어떻게 펼쳐져 있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서울시가 황학동 길가에 무허가 잡화점을 정리하면서 동대문 운동장으로 임시 거처를 사용하게 하고 난 뒤에
지금의 신설동 근처로 정착을 시켜 놓았습니다.
벼룩시장 같은 곳입니다.
온갖 옛날 물건들은 물론이고, 신 상품도 적잖게 싸게 파는 곳입니다.
최근 신문에서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 IT는 서울의 풍물시장에서 가져다 조립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가봐야지!’ 했던 곳에 무거운(?) 몸을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간절기 탓인지 몸 움직임이 사뭇 무거워진 느낌입니다.
마라톤도 해야 하는데~~~
이대로 허송세월을 보냈다가는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생각은 했지만 예배를 마치고 나니 다시 게을러지고 맙니다.
이것저것 할 일은 많은데 자꾸만 나태해지는 스스로를 깨닫게 됩니다.
어쩐 일인지 아내가 선뜻 ‘다녀오라’고 합니다.
쓸데 없이 뒹굴뒹굴하는 것이 보기 싫었나 봅니다.
‘쇼핑할 시간 여유 갖고 되돌아 오라’는 지시(?)를 하지만 귀 밖으로 들립니다.
한번 가면 돌아보는 데만 엄청 시간이 걸리는 것을 뻔히 알기 때문입니다.
오후 느즈막히 집을 나섰는데 이동시간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리고 말았습니다.
온갖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 차 있다 보니 한번 돌아보는데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더군다나 휴일이 되다 보니 시장 입구에도 저마다 들고나온 온갖 물건들과 구경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좀처럼 혹!하는 물건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지도 않을 꺼면서 괜히 가격만 흥정해 봅니다.
상인들은 살지 안 살지 훤히 들여다보고 싱겁게 답변하기 일쑤입니다.
진열된 상품들 중에는 중국산도 꽤 많아 보입니다.
마치 박물관에 온 것 같습니다.
한참을 돌아보고 되돌아 나오려는데 옛날 고등학교 교복이 눈에 띄었습니다.
웬지 정감이 듬뿍 느껴집니다.
오래 전부터 옛날 학생 모자를 하나 사고 싶었습니다.
생각보다 비싸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깎을 것을 미리 예상해서 꼬리(?)가격이 붙어 있습니다.
이것 저것 들여다보다가 도장도 새겨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중에서 새기는 것보다 훨씬 저렴했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얼른 도장 재료를 골랐습니다.
사실은 ‘도장을 새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나선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돌아보아도 없던 것이 막판에 눈에 띈 것입니다.
기계로 새기는 것이긴 해도 훌륭하기만 합니다.
내친 김에 학창시절 모자도 하나 샀습니다.
1,000원은 알아서 할인해 줍니다.*^-^*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모처럼의 풍물시장 나들이는 새로운 힐링의 도구가 되어 귀가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쇼핑할 시간은 사라져 있었습니다.
아내의 압박이 계산되어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다음에 또 가야 합니다.
점 찍어 둔 물건이 있습니다.
허송세월
밖에 있으면 실내로 들어가고 싶었고
실내에 있을 때는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가장 심할 때는 일단 좀 앉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가,
자리에 앉자마자 일어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그래서 일어난 다음에는 다시 앉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인생을 허비했다.
- 제프 다이어의《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