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
“그렇게 자르지 마요!”
“과감히 잘아야 한 댔어!”
“누가 그래요? 너무 자르면 열매가 별로 없잖아요?”
“이거 앞으로도 키가 엄청 큰다니까~”
“줄기가 엄청 굵은데 잘라내면 어떻게 해요?”
“그래도 가운데 한 줄기만 남기면 돼!”
“쓸데 없이 그건 왜 자르고 그래요?”
“자기가 전문가야?”
“전문가는 아니어도~”
“전문가가 그랬다니까~”
“전문적인 농사도 아니고~~~”
“이러면서 배우는 거지~”
“~~~”
보슬비가 이른 아침부터 내립니다.
‘오후 늦게 갈까~’ 했는데 아침 일찍 서둘렀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 그래서 좋은가 봅니다.
선뜻 따라나서는 아내와 함께 주말 농장을 찾았습니다.
사실은 상추를 매주 솎아 주지 않으면 금새 풀과 함께 뒤범벅이 됩니다.
검정 비닐을 덮어씌워 심으려 했지만
‘다섯 평도 안 되는데 비닐은 뭐 하러 뒤집어 씌우느냐?’는 말에 그냥 심었습니다.
날마다 상추쌈으로 식단이 정해져 있습니다.
밥은 적게 먹으면서 상추는 잔뜩 뭉퉁 그려 싸 먹습니다.
제법 연한 것이 맛이 있습니다.
부페에 가면 푸른 색과는 일절 교류(?)를 하지 않는 병은이도 자주 상추에 손이 갑니다.
직접 가꾸었다는 소박한 사실 하나가 갖고 온 축복입니다.
아내는 농촌 출신입니다.
말 수가 적어 별로 아는 척을 하지 않지만 농사 만큼은 저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농사라 하면 한 마디 할 수는 있습니다.
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도 [실과 연구학교]라는 명칭에 걸맞게 학교 실습 부지에 이것 저것 가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모내기부터 벼 베기까지 매년 따라붙는 수업 스케줄이었습니다.
고추 밭에는 인분까지 퍼다 주는 끔직한(?) 정성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아버님과 함께 했던 화초 가꾸기는 거의 학창시절 대부분을 소비한 기억까지 더듬어 올라 갑니다.
나무를 잘라 삽목을 거쳐 뿌리내리기가 끝나면 곧바로 화분갈이를 해야 했고,
선인장은 모래밭에 뿌리 내리기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기도 했습니다.
여름 내내 풀 베기와 각종 거름들을 모아 화분 갈이할 때 넣어줄 비료를 만드는 일도 일상이었습니다.
시골 학교 사택에 살았던 덕분에 학교의 텃밭을 자연스럽게 가꾸어야 했습니다.
텃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광대했습니다.
그러니 농사에 일가견이 저절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제가 하는 일에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티격태격 하면서 상추를 솎아주는 일이 재미 있기만 합니다.
‘토마토의 줄기는 과감하게 잘라주어야 한다’는 친구의 말에 사정없이 자르다가 한마디 들었습니다.
처음 모종을 살 때 찰 토마토라 해서 샀는데 자라고 보니 방울 토마토입니다.
‘줄기를 너무 치지 말라’는 아내의 제지와, 무조건 ‘과감하게 잘라주어야 한다’는 저의 생각이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대충 상추를 수확을 하고 잔풀까지 제거하니 비도 그쳤습니다.
‘사진 찍는다’고 핸드폰 들이대니 ‘세수도 안 했다’며 손사래를 칩니다.
영락없는 시골 아낙네입니다.
그런 모습이 그저 즐겁고 행복하기만 합니다.
남의 밭 구경하는 재미도 솔솔 합니다.
산다는 것
산다는 것
지금 산다는 것
지금 멀리서 개가 짓는다는 것
지금 지구가 돈다는 것
지금 어디선가 갓난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것
지금 어디선가 병사가 다친다는 것
지금 그네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
지금 지금이 지나가고 있는 것
-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살다〉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