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의 신장 이식 수술
“이제는 괜찮아지는 거야?”
“아무래도 편해지겠지?”
“그럼 이 걸리적 거리는 거는?”
“당연히 떼어내지”
“완전히 떼어내는 거야?”
“그렇대”
“와~”
“수술이 성공해야지~”
“잘 되겠지~”
“잘 돼야지!”
“축하! 축하!”
“고마워!”
누님에게 의사는 ‘아이를 낳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누님은 막무가내로 건장한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결국 고질적이던 신장병이 악화되고 투석이라는 황당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지금이야 투석도 간단하게 하지만 예전에는 배에 구멍을 뚫고 커다란 비닐 봉지에 들어있는 투석 액을 배 속으로 흘려 넣어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비닐 주머니를 연결된 호스와 함께 접어서 배에 달고 다니다가 다시 배 안에 있는 투석 액을 빼내는 작업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투명했던 투석 액이 노랗게 오줌 물처럼 바뀌어 나왔습니다.
삼투압 방식으로 소변을 배출하도록 해서 기능을 못하는 신장대신에 받아내는 것이랍니다.
어딜 가지도 못하고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고통의 나날이었습니다.
급기야는 오랜 시간 봉직했던 교직도 버려야 했고, 투병에 전념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가족 중에 누군가 한쪽 ‘신장을 이식해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압박만이 가족을 힘들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누님과 혈액형이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혈액형이 달라도 수술이 가능하답니다.
그나마 어머니가 같은 혈액형이라 해서 어머니가 수술대에 오르려고 검사를 했는데 알고 있던 혈액형이 아니랍니다.
‘이런! 이런!’
그렇다면 누님은 어떻게 된 걸까?
아픈 누님은 이렇다 말이 없는데 온 가족이 난리가 났습니다.
부모의 혈액형대로 자녀가 태어나야 하는 지극히 당연한 원리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의사 선생님의 한마디가 가족 모두를 일단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혈액형을 세분하여 보면 BB형과 BO형이 만나 아주 드물게 O형이 나올 수 있답니다.
BB형인 아버지와 BO형인 어머니 사이에서 드물게 O형이 나온 것입니다.
잠시나마 엄청난(?) 의문을 가지고 누님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누님이 당장 이식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의 끈이 점차 느슨(?)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날마다 눈물로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신장을 기증하겠다’는 분이 나타났습니다.
누님의 사정을 전해 들은 친척분의 헌신적인 나눔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족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나눔입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한 누님이 배에 비닐봉지를 달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고,
당연히 투석이라는 고되고 반복되는 일상이 원래대로 평범해졌습니다.
평균 삶의 연속을 지나 삶의 끈을 이어가던 누님은 평생을 돌봐주던 병원에
‘연구하는데 활용하라’고 치료받던 몸을 그대로 기증하고 떠나셨습니다.
헌신적인 간병을 도왔던 자형과 힘들게 낳은 아들을 두고 되돌아 올 수 없는 먼 여행을 떠났습니다.
벌써 세월이 흘러 먼 옛날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은 손주가 둘씩이나 태어났지만 볼 수가 없습니다.
이맘때가 되면 늘 아쉬움과 누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칩니다.
‘젊은 나이였는데~~~’
선배님의 신장 이식 수술
저는 스트레스 때문에 고민하는 환자들을 많이 만납니다.
스트레스의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스트레스입니다.
게다가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가장 가까운 사람한테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누굴까요?
바로 부인, 남편, 자식, 부모,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 등 진료를 받으러 오시는 대부분의 분들이 비슷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가까운 사람들끼리 스트레스를 주고받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가까울수록 기대가 크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나랑 가까우니까, 나를 이해해줄 거야. 그리고 내 마음을 알아줄 거야.'라고 기대를 하는데,
막상 상대방이 내 마음을 몰라주거나 내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또는 공감을 받지 못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진료 현장뿐만 아니라, 강의 현장에서 주부를 만나게 되면 물어봅니다.
"누가 가장 스트레스 주나요?"라고 물으면 동시에 대답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시겠죠?
"남편 "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남편의 한 명으로서 마음이 아픕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받을까요?
바로 공감해주지 못하기 때문이죠.
특히 남자들은 공감 표현이 아주 약합니다.
마음은 있어도 공감을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아내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부부와 같이 가까운 관계일수록 서로 표현을 못 해서 스트레스를 주고받지만,
그래도 정말 힘든 순간에는 서로를 위하고 희생할 수 있는 관계가 바로 배우자나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한 선배를 만났습니다.
그 선배는 오래 전부터 당뇨로 고생을 많이 했고 결국 당뇨의 합병증으로
신장의 기능이 망가져 투석을 오랫동안 받다가 신장 이식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수술이 굉장히 큰 수술이고 어려운 수술인 걸 알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수술을 잘 받고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여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동환아, 요즘엔 기술이 좋아져서 신장을 주고받을 때 혈액형이 달라도 된다는 걸 알고 있지?"
"신장을 이식 받은 환자들이 병실에 쭉 누워있는데 신장을 준 사람들 중 누가 제일 많이 준 지 아니?"
그래서 저는 "혈액형에 상관없이 줄 수 있으니까, 가족 중에서 형제나 부모, 배우자 중... 누굴까요?라고 얘기했습니다.
"병실에 누워 있던 모든 환자들이 100% 부인이 줬단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혈액형에 관계없이 신장 이식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통계에도 신장을 준 사람들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사람이 배우자로 되어 있습니다.
월등하게 많습니다.
그만큼 항상 서로 공감 받지 못한다고 스트레스를 주고받는 관계이지만,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서로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관계가 바로 가장 가까운 관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 선배는 마지막에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정말 아내가 신장을 줘서 너무 고맙고 앞으로 잘 하고 살아야겠다"고 말하고는
눈물이 글썽이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주 찡해졌습니다.
'평소에 내가 공감해주지 못했고 공감 받지 못 해서 서로 스트레스를 주고받던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정말 힘들 때 옆에 있어줄 수 있고 희생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떠올랐던 그분과 공감을 표현할 수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욱더 건강한 관계를 이루어가면서 더욱더 건강한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 이 동환 교수(힐링닥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