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곧 끝나버린다고 생각하며 살라
“여기서 사진 하나 찍어줄래?”
“당연하죠! 하나 두우~”
“내년에도 또 올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네? 그게 무슨 말이세요?”
“힘들어~ 이젠 사진으로라도 남겨야지”
“사진이야 언제든지 찍으면 되지요”
“점점 기력이 없어져!”
“운동을 살살 하셔야지요?”
“요즘은 걷는 것도 제대로 못해”
“병원에서는 뭐래요?”
“병원에는 맨 날 ‘좋다’고만 하지~”
“좋으니까 ‘좋다’고 하는 거 아녜요?”
“병원에 오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다행인줄 알라고 하더라”
“의사가요?”
“회진도 안 와!”
“그럼 병원에 가서 뭐해요?”
“맨날 항암치료 하는 거지 뭐! 지난번에는 머리털이 얼마나 빠지든지~”
“효과가 있다는 거 아닌가요?”
“살아 있는 지금이 좋은 거야”
“힘 내세요”
벌초를 하면서도 내내 신경이 쓰입니다.
큰 형님이 투병하기 시작하신 지 벌써 꽤 여러 해가 흘렀습니다.
매번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시지만 점점 힘들어 하시는 것을 잘 압니다.
이번 벌초도 어떻게 할지 고민했지만 큰 형님이 직접 풍 깎는 기계를 들고 나타나셨습니다.
직접 기계를 움직이시지는 않지만 잘 돌아가도록 점검까지 해서 기름까지 사 들고 오셨습니다.
구형이다 보니 덩치가 엄청 큽니다.
신형보다 힘이 쎄서 풀 베기 뿐만 아니라 웬만한 나무도 전부 잘려 나갑니다.
가끔 돌이 튀어올라 기겁을 하게 하지만 1년에 한번뿐인데도 나름 기계 작동하는데 어려움은 없습니다.
저는 조카들보다 훨씬 발군의 실력을 뽐낼 수 있습니다.*^-^*
기계를 메고 풀 베는 일은 제 몫입니다.
큰 형님의 고향 사랑은 남다릅니다.
어릴 적 성장을 가장 많이 한 곳이기도 하지만 장남으로서 조상님들에 대한 예우가 특별합니다.
옛날에는 장남 하면 그 누구보다 큰 사랑을 받는 것을 당연시 여겼습니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나 아버님에 대한 남다른 챙김(?)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본인이 크게 대우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고만고만한 꼬맹이들로 가득한 식구들 중에 장남이라고 특별 대우 받아 봤자 거기가 거깁니다.*^-^*
그럼에도 장남으로서 책임감이 앞서기 때문인가 봅니다.
치료 중이라 힘들어 하면서도 농담만은 빼놓지 않습니다.
어디까지 진짜고 어디서부터 가짜인지 분간이 안 갑니다.
그저 웃다 보면 다른 이야기로 이미 옮겨져 있습니다.
그렇게 형제는 아웅 다웅이 아닌 즐거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각자 살아가면서 자주 뵙지 못하는 아쉬움만이 사무치기만 합니다.
그나마 벌초하면서 오래도록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도 화장해서 납골당으로 이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힘들지만 재미 있잖어?’
‘그렇기는 해요’
‘일년에 서너 차례 오는 건데 그냥 두자구!’
‘그러죠! 뭐!’
‘얘네들 때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
‘계속 해야지요 뭐!’
씁쓸한 이야기로 번지고 말았습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뭔가 한 것 같은 산소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어르신들은 그대로 두고, 우리들은 나중에 산소 자체를 없애는 것이 맞지’
삶이 곧 끝나버린다고 생각하며 살라
삶이 곧 끝나버린다고 생각하며 살라.
그러면 남은 시간이 선물로 느껴질 것이다.
현재의 삶은 최고의 축복이다.
우리는 다른 때,
다른 곳에서 더 큰 축복을 얻게 되리라 기대하며
현재의 기쁨을 무시하고는 한다.
지금 이순간 보다 더 좋은 때는 없다.
- 톨스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