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레터

다시 출발한다

더큰그림 2015. 11. 3. 10:20

“오늘은 빨리 왔네?

“그려처음에 천천히 뛰니까 늦어도 너무 늦어 버리더라구~

“하긴 그려 내친 김에 뛰어야지살살 뛰다간 나중에 오히려 힘이 빠져!

“맘 먹고 처음부터 속도 좀 냈지!

“그래도 무리 하진 말어!
“무리는 몸이 알아서 멈추게 할 꺼야!

“즐달 해야지 무리하면 안 돼!

“그랴먼저 가난 천천히 갈께!

“그려이따가 봐!

 

빨리 뛰고 싶다고 그냥 뛰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래도 마음만은 언제나 써브쓰리(SUB 3) 입니다.*^-^*

처음에는 남들하고 덩달아 달리게 되니 나름 속도가 붙습니다.

하지만 금세 몸에서 이상 신호가 옵니다.

결국은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사람들과 동급(?)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너무 늦게 뛰는 것은 나중에 회복시간과 비례하기 때문에 더 힘들기만 합니다.

몸이 조금만 받아주기라도 하면 속도를 내야 합니다.

모처럼 초반부터 속도를 내 봤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기준에서 속도지 다른 사람들 기준에는 말도 안 됩니다.*^-^*

 

이미 상당수가 앞으로 치고 달려나갔습니다.

대충 무리가 형성되면 그 무리 속에 유지하는 것도 나름 속도를 내는 것입니다.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페이스 메이커는 다 지나갔습니다.

아주 늦은 페이스 메이커가 없어서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제한 시간을 넘긴 페이스 메이커가 가끔 있습니다.

그 사람들 쫓아가면 제한 시간 오버됩니다.

비록 제한 시간 내에 페이스 메이커라 하더라도 너무 뒤쳐지면 안 됩니다.

 

아침 일찍부터 날씨가 쌀쌀해서 걱정했는데 오히려 달리는 기분에는 최고인 것 같습니다.

가을의 전설을 쓰고 불과 일주일인데 아무 연습도 없이 푹 쉬기만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을의 전설을 쓸 때는 온갖 사전 행사(?)로 다리는 물론이고 온 몸이 피곤해서 걱정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해서인지 몸이 가볍기만 합니다.

아침에 밀어내기(?)도 두 번이나 했습니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처음 힘 있을 때 한껏 달리자는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보통은 처음에 빨리 달리지 않고 천천히 몸을 달구는 전략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천천히 달리는 속도조차 뒤로 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처럼 초반에 달릴 수 있는 만큼 달려놔야 나중에 천천히 달려도 시간 단축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5km까지 비교적 순조로운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순간 앞질러가는 친구를 불렀습니다.

그 친구는 중풍으로 쓰러졌었지만 뜨거운 의지로 잘 극복하고 풀 코스를 밥 먹듯이 완주합니다.

어느새 시간단축도 저를 앞질러 갑니다.

뛰는 폼은 아무리 봐도 평상과 똑같습니다.

아무도 중풍 맞았던 사람인지 모릅니다.

마라톤이 해내는 기적입니다.

친구가 앞서가다가 잠시 멈추더니 대뜸 한마디 합니다.

 

‘오늘은 빨리 왔네?

 

이미 늦은 페이스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충 시간대를 보니 평사시보다 빠르다고 느꼈는 모양입니다.

서둘러 달렸다기 보다는 달려 나가는 주변 사람들과 엉겁결에 낑겨 달렸습니다.

다행히 숨도 차지 않고 다리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이내 앞서가는 친구를 멀리 바라보며 반환점 돌고 욕심 내다 보면 따라갈 수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역시 생각 뿐이었습니다.

 

반환점을 돌면서도 그리 힘들지 않은 것을 보니 욕심이 슬슬 샘 솟기 시작합니다.

적어도 막판 골인할 때는 시간 계산 해 봐도 될 것 같습니다.

40km를 지나면서 ‘조금 더 빨리 골인한다고 뭐가 된다구~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차장으로 몸을 돌려 카메라 장착된 핸드폰을 꺼내 왔습니다.

2분은 족히 날라갔습니다.

그래도 골인하면 사진이라도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갔습니다.

이제는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즐기는 마라톤이 더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도전도 즐겁게 출발해야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해 넘기기 전에 한번 더 뛰어야 할까 봅니다.

 

다시 출발한다

 

새로운 출발이 실패로 끝난다고 해서

인생이 영영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출발하면 또 새로운 인생이 눈앞에 열립니다.

언제든지 숨 쉬고 있는 동안은 다시 출발할 수 있는데도

이러한 삶의 특권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정 도언의《프로이트의 의자》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