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
“네?”
“아! 네~”
“저희 집이요?”
“아니! 저~”
“우선 거기 주소를 불러 주세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상황이 바뀐 거면 이야기를 해야 하잖아?”
“어떻게 하라는 거야?”
“아이! 정말 답답하네~”
“~~~”
“얘기를 해야 될 꺼 아냐?”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화를 내니까 무서워서 말을 못 하겠잖아요?”
“상황이 바뀌었으면 바뀐 것을 설명 해줘야 할 꺼 아냐?”
“미안하니까 그랬지요”
“뭐가 미안해?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전화를 넘겨주면 내가 그 사람이 누군 줄 아냔 말야?”
“그 사람이 아무 얘기 안 했어요?”
“나! 이런~ 내가 당신 머리 속을 어떻게 알아?”
“~~~”
“지금 나를 바보로 만들고 있잖아?”
“~~~”
“에이! 도대체 이게 뭐야? 승질(?)만 나게 하고~”
“~~~”
“말을 해야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꺼 아냐?”
아이들은 이미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은지는 아예 방문까지 받아 버렸습니다.
상황이 묘하게 꼬여 갑니다.
하루 종일 편두통으로 고생하다가 겨우 오후 늦게서야 주말 농장으로 배추 수확하러 갔다 왔습니다.
오랜만에 병은이도 동행했습니다.
수확한 배추를 우리 스스로는 할 것이 없습니다.*^-^*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처형께 갖다 드리면 뭔가가 만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처형이 당장 집에 안 계신 겁니다.
곧바로 처형 댁으로 가지 못하고 일단 집에 들어와야 했습니다.
주말 농장을 거쳐서 쇼핑 한 것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는 중에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아내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저에게 핸드폰을 넘깁니다.
상대방이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다짜고짜 ‘네비게이션은 있을 꺼 아니냐?’고 다그칩니다.
뭔 소리를 하는지 어리둥절 하면서도 일단 그쪽 주소를 받아 적었습니다.
처형이 계신 곳의 위치를 알려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집으로 가셔야 하는데 비가 오니 어차피 처형 댁에 가야 할꺼면
‘지금 처형 계신 곳을 거쳐서 모시고 가면 어떨까?’하는 대충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제가 뭐라 하니까 아내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처음 예정된 일정이 바뀐 것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영문도 모르는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도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 아내에게 분통이 터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큰 문제는 얼마 지나고 나서야 발생했습니다.
또 다시 전화가 걸려오고 아내는 저에게 와서 슬쩍 들여다 보면서 하는 말이,
‘지금 안 될 꺼 같아요! 그냥 언니! 택시 타고 집으로 가요’하는 겁니다.
편두통으로 힘든 상황과 아무 소리 안 하는 아내에게 깝깝했던 마음이 그냥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대충 정리해보니 저녁식사 전에 저 혼자 처형을 모시고 가서 담궈놓은 김치도 갖고 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제 머리 속은 ‘처형이 저녁도 먹고 느즈막히 집으로 가시니까 저녁 먹고 아내와 함께 모시러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전화는 ‘바로 모시러 오라는 것’이었나 봅니다.
아내는 제가 화난 줄 알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 처형으로부터 또 다시 전화가 온 것입니다.
제가 화가 나서 갈 것 같지 않은 상황이라 판단 했다면 얼른 ‘못 간다’고 처형에게 전화를 하든지,
아니면 저에게 ‘지금 다녀와 줄 수 있느냐?’고 물었어야 했습니다.
아무 소리 안 하고 ‘끙~’ 하고 있다가 결국 처형 전화를 다시 받고서야 ‘못 간다’고 하니,
졸지에 저는 가기 싫어서 안 간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내는 가끔 자신의 머리 속의 생각을 저도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부부는 일심동체라 하지만 말 안 하면 모르는 건 모르는 겁니다.
생각을 정확히 말을 하지 않는 바람에 황당한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당혹스러운 일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지요’
‘그 사람이 이야기 안 했어요?’
‘왜 화를 내고 그래요?’
‘미안해서 그랬지요’
‘~~~’
저는 예정된 상황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바뀌면 당황스러워 합니다.
바뀐 상황이 이해되어야 안정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급기야는 화까지 내고 맙니다.
그런데 아내는 수시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지 않은 채 알아서 해주기를 바랍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데도 성격인지 화부터 납니다.
여전히 기(氣)가 살아 있는 것을 보니 아직도 제가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아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텐데~~~
아내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
그들은 신발 바닥에 딱 붙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젖은 낙엽처럼 아내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직장에서의 유능함이 반드시 은퇴 이후의 삶에서도 유능함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내는 일에 열중하는 남편 없이 평생을 살아 왔기에 감정적인 독립과 자아정체 감을 이미 달성한 상태이다.
아내는 사회적 생존과 관계를 위한 적절한 기술을 이미 소유하고 있다.
반면 남편은 그런 기술이 부족하다.
그는 물 밖에 나온 물고기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게 된다.
아내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
반면 아내는 자기의 평화로운 일상생활을 끝없이 방해하며 관심을 요구하는 남편에게 짜증이 난다.
- 브라이언 로빈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