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뛰시면 몇 번째가 됩니까?”
“삼백서른 일곱 번째”
“우와~ 100회는 명함도 못 내밀겠네요?”
“뛰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어!”
“일년에 가장 많이 뛰신 때는 얼마나 뛰셨어요?”
“서른 여섯 번!”
“거의 매주 뛰셨네요? 괜찮으셨어요?”
“괜찮으니까 여기도 왔지”
“그렇네요? 진짜 대단하시네요?”
“100회 넘은 사람 중에 서브4 못한 사람은 나 밖에 없어!”
“아닐 겁니다. 천천히 뛰는 사람 많아요”
“이젠 점점 늦어져!”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잖아요? 건강하게 달릴 수 있다는 것이 더~~~”
“앞으로 얼마나 더 뛸라나 모르겠어?”
“어르신은 오래오래 장수하실 겁니다”
“그럼 좋고~”

달릴 때 자주 뵙는 어르신이 멀리 까지 오셨습니다.
서울에서 다소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새로운 코스라 해서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하긴 어디에서 뛰나 똑같은데 괜히 비용만 더 많이 지불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우연히 어르신과 같은 숙소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익숙하게 안면이 있지만 지나치면서 인사 외에는 말씀을 나눌 기회도 없었습니다.
모처럼 자연스럽게 마라톤의 무용담을 듣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는 연세가 아주 많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팔순이 곧 내일 모레이신 분이십니다.

구부정한 자세로 언제나 똑 같은 페이스로 달리시다 보니 자주 추월 당했던 쓰라린 추억이 새롭기만 합니다.
마라톤 하면서 어르신이라고 얕잡아 봐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꾸준하게 달리기를 하시니 체력은 물론 정신력이 대단하십니다.
예상은 했지만 300회를 훌쩍 넘기시도록 엄청난 달리기를 하셨습니다.
100회 완주하시던 대회를 기억하는데 그 뒤로 무자비하게 달리셨나 봅니다.
하긴 일년에 가장 많이 달리신 것이 36회라니 곧 500회도 달성하실 것 같습니다.
여전히 배고프고 목말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친 김에 500회는 기본으로 가실 모양이십니다.

할머니 한 분이 또 계십니다.
이 분 역시 구부정한 자세로 똑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십니다.
30km가 되기 전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했습니다.
적어도 할머니 보다는 일찍 골인해야겠다는 욕심이 발동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36km를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할머니가 앞서 가셨습니다.
엄청난 끈기를 자랑하십니다.
할머니도 은근히 저를 앞지르려는 욕심이 있으셨나 봅니다.
괜히 앞서거니 했나 후회됩니다.
하긴 저마다 제 각각의 목표를 가지고 출전을 하는 것이 당연하기는 합니다.

가슴 한 켠에 태극기 마크도 붙였습니다.
특별히 허리춤에 별도로 커다란 태극기를 접어 넣고 뛰었습니다.
골인 점에서 특별한 세리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아주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한 시간 내에 골인하려는 노력 때문인지 다소 힘에 부친 것은 사실입니다.
자원 봉사자들이 엄청 많은 대회였습니다.
42.195km내내 달리는 사람보다 많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똑 같은 스탭 복장을 입고 응원과 함께 물과 간식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억지로 코스를 만들었는지 꼬불탕 꼬불탕 왔다 갔다를 반복하면서 자주 후미 주자들을 만납니다.
역시나 엄청 많은 응원단(?)이 환호하는 가운데 더 달릴 필요 없을 만큼 달려 왔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골인 점을 향해 태극기를 펼쳐 들었습니다.
모두가 저한테 환호성을 쳐주는 것 같았습니다.
골인했습니다.
골인 점 앞에서의 멋진 포즈가 쑥스럽기만 합니다.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는 혼자만의 세리머니였습니다.*^-^*

어르신 두 분이 이미 골인한 다음이라 더 기다릴 사람도 없습니다.
제한시간이 길어서인지 아직도 열심히 달려 들어오는 사람들이 줄을 잇습니다.

만찬이 고기라던데 ‘혹시 백숙 아닌가?’ 생각하면서 백육(106)했습니다.

달리는 여자가 아름답다

달리는 여자가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언제부터인지 많이 달라져 있다.
날씬한 아가씨보다는 제대로 살을 붙인 좀 투실투실한 여인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세련된 것보다는 투박하더라도 원형 그대로인 것이 더 대견하다.
앉아 있는 사람보다는 서 있는 사람이,
서 있는 사람보다는 걷는 사람이 더 예쁘다.

- 이 제하의《모란, 동백》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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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큰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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