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레이몬 소세지 가게

 

안녕 하십니까 홍하상입니다.

저 북해도의 입구, 하코다테에 모토마치라는 마을이 있다.

하리토리스 러시아 정교회의 희고 둥근 돔 지붕이 올려다 보이는 언덕길. 가을의 단풍이 물들면  이 언덕길에서 항구가 내려다보인다.

바로  그 언덕길의 한 모퉁이에  독일식 3층 흰 건물이 하나 서있다.

 

칼 레이몬드 소세시 가게.

이 가게가 사실상 일본 최초의 소세지 가게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게에 들어서면 60종의 소세지가 진열장에 단정하게 넣어져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 가게가 문을 연 것은 1924. 독일인 칼 레이몬에 의해서였다.

칼레이몬(1894-1987)은 지금은 체코 땅이 된 오스트리아 보헤미아 지방의 카를로스버드에서 태어나 식품가공 마이스터 과정을 마치고 소세지 기술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유럽과 미국을 돌면서 소세지의 가공기술과 경영학을 배우게 된다.

미국에서 독일로 가던 중 그는 잠시 일본에 들르게 되었는데 거기서 그만 덜컥 <동양 캔>이라는 통조림 회사에 스카우트 되었다.

그 회사는 미국과 일본이 합작해서 만든 회사. 거기서 그는  그 회사의 북해도 하코다테 지점에 부임했다.

 

거기서 그는 가쓰다 고우라는 일본여인을 만났으나 2년 뒤 혼자 고향 독일로 돌아가 소세지 가게를 열었다.

그러나 그는 가쓰다 고우를 잊지 못해 다시 하코다테로 돌아왔고 그녀와 결혼했고 역전에 독일 소세지 가게를 열었다.

가게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5년 뒤 첫 번째 공장이 8년 뒤 두 번째 공장이 세워졌다.

그러나 1938년 중일전쟁이 터지면서 그의 공장들이 강제로 몰수당하자 그는 바로 오늘날의 모토마치에 살림집 겸 가게, 공장을 차리고 장사를 시작했다.

이후 그는 198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50년간 그 가게에서 일하면서 일본에 소세지와 햄의 발전에 이바지했고,

지금도 그가 세운 가게는 과거 그가 만들던 소세지와 똑같은 맛의 소세지를 팔고 있다.

<자연 본래의 맛을 살려라>,<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 듯 만들어라>

그는 그런 신념으로 소세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내가 만든 소세지는 본래의 맛을 손으로 되살리는 것이다>,

<내가 만든 햄은 고기의 세포를 일시적으로 잠들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소세지가 인간의 위로 들어가면 그 세포가 다시 살아나고 병도 치료되는 힘이 나온다

그의 소세지 제조비법이다.

칼 레이몬드는 세상을 떠났으나 그가 만든 소세지와 햄의 맛은 여전히 살아있다.

 

어떠한 인공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맛이 살아있다.

오늘날 그의 가게는 손자에게 전해져 이제는 종업원 75명의 작은 공장도 가지고 있다.

내가 그 가게에서 제일 좋아하는 소세지는 차조기 잎을 섞어서 만든 소세지이다.

6개에 760엔으로 우리 돈으로 만원 가까이 하지만, 두 개 째 먹을 때는 조금은 느끼하게 되는 소세지의 맛을 쌈박한 차조기 잎이 가시게 해준다.

그러면서도 아주 담백하고 순수한 절정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

오늘날 일본은 음식의 대국이 되었다.

프랑스의 음식 가이드북 <미슐랭> 도쿄 편에서는 별 3개 만점을 맞은 식당이 8개가 탄생했다.

미국의 뉴욕도 단 2개만이 별 세 개 만점을 맞았는데 무려 8개 식당이 만점을 맞은 것이다.

일본이 음식 대국이 된 것은 남의 나라 음식 문화를 제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혀와 눈과 코와 귀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그 섬세한 혀와 그 눈의 관찰력과 냄새에 대한 민감함과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있다는 것이다.   

칼 레이몬는 소세지를 만드는 법을 일본인들에게 가르쳐주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1924년 생산 당시부터 지금까지 그 순수한 맛을 그대로 지키면서 소세지를 만들고 있다

작년 12, 오랜만에 가게의 한쪽 귀퉁이 카페에 앉아 차조기 잎이 들어간 소세지를 먹었다.

벽에는 칼 레이몬의 커다한 대형 흑백 브로마이드 사진이 걸려있었다.

소세지를 입에 넣자 마치 칼 레이몬이 내 옆에 앉아 <맛이 어때요?>라고 묻는 것만 같았다.

과연!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세워주었다.

 

-홍 하상(일본의 상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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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년 떡 가게의 종업원 실천사항

 

토라야(虎屋) 1241년에 교토에서 문을 열어 8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일본 제일의 떡 가게입니다.

전국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성을 가지고 있고, 뉴욕과 파리에도 지점을 둘 정도로 대표적인 떡집이죠.

지금은 본사가 도쿄로 이전했고, 2011 900명의 종업원에 약 3,500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비록 작은 떡 가게로 출발했지만, 떡 가게가 이렇게 큰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죠.

당대 최고의 떡 가게, 토라야의 가훈과 종업원 실천사항을 한번 보겠습니다.

 

<가훈>

1. 상인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라.

2. 한 우물을 파라.

3. 낭비를 하지 마라.

4. 금전을 빌릴 때는 신중하고 엄격 하라.

5. 교제는 필요이상으로 하지 마라.

6. 취미를 갖되, 그 방면의 일류가 되라

7. 자손이 없을 땐 양자라도 들여서 가업을 잇게 하라.

8. 선조에 대한 공양을 확실히 하라

9. 놀 때는 확실하게 놀아라.

 

<실천사항>

-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가게 앞을 장식하고 청소할 것.

- 궁중 납품 시 부정함이 없도록 명심할 것.

- 궁중은 말할 것도 없고 여타의 손님을 뵈러 갔을 때는 오래 머물지 말며 정중히 공경하는 자세로 대하고 용무가 끝나면 즉시 돌아올 것.

- 멀리서 일로 찾아오는 고객은 물론이고, 우리 지역의 고객들에 대해서는 자상히 응답하고 접대에 부실함이 없도록 주의 할 것.

- 가게에 일에 관해서는 각자 특기를 갖도록 노력하고 무엇보다 윗사람이 아래 사람을 잘 가르칠 것.

- 장을 보러 가는 일은 위로부터 3-4인에게만 시킬 것.

- 종업원 25명당 1명의 지배인들 두고 도구관리를 시킬 것.

- 고용인 중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은 확실히 파악하여 주인에게 알릴 것.

- 모든 종업원은 상중하를 막론하고 서로 노력하여 글씨와 산술을 배울 것

- 손님이 와서 주연()을 제공할 때는 어떠한 대접이라도 저녁7시를 넘기지 말 것.

- 종업원들은 일하면서 잡담을 금지할 것.

- 모든 종업원은 신고 없이 외출을 삼갈 것.

- 어린 종업원은 담배를 피울 수 없으며 적발 시 바로 지배인에게 보고할 것.

- 항상 불조심할 것.

- 고용인 모두에게 매월 2회씩 주연을 베풀되 소박하게 할 것.

 

좁쌀보다도 더 작은 실천사항이지만,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구체적이고,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 담겨있죠.

8백년 떡 가게 토라야. 800년 전통은 거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홍 하상(일본 상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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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채워라.

이전글 2017. 9. 26. 14:46

적당히 채워라.

 

어떤 그릇에 물을 채우려 할 때

지나치게 채우고자 하면

곧 넘치고 말 것이다.

모든 불행은

스스로 만족함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 최인호의 《상도(商道) 4》 중에서 -

 

, 계영배(戒盈盃)라는 술잔은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말인데,

이 계영배는 술잔의 7부까지만 채워야지 그 이상을 부으면

이미 부은 술마저도 사라져 없어져 버리는 신비로운 그릇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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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을 감동시키는 진심, 전통여관 히이라기야(柊屋)

 

혹시 일본의 전통여관에서 주무신 적이 있으신지요?

일본의 여관은 참 아름답죠.

오늘은 일본의 3대 여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여관, [히이라기야]를 소개합니다.

히이라기야(柊家)여관은 1818년에 처음 문을 열었고 200년이 좀 못되었습니다

히이라기야라는 말은 호랑가시 나무를 뜻합니다.

늦겨울이면 호랑가시 나무 꽃이 피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죠.

방문해서 보니 전통적인 분위기가 철철 넘치는 목조 2층 건물로, 본관에 21개의 방과 신관에 7개의 방이 있습니다.

각 방은 아름다운 정원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나무욕조로 만들어진 목욕탕, 일본 창호지를 바른 문, 오래된 기둥에서는 여전히 전통의 향기가 배어있습니다.

이러한 여관을 가리켜 일본에선 화풍(和風)여관이라고 하죠.

전통 분위기가 그대로 베어있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화풍여관은 숙박업소가 아니라 전통을 파는 곳입니다.

단풍잎이 수 놓인 칠기오차뚜껑, 두루미가 그려진 금 병풍, 일본식 꽃꽂이에 정갈한 다다미, 일본산 대리석이 깔려진 복도, 하얀 회칠을 한 일본의 전통가구 등..

일본이 자랑하는 멋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이곳에 모여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어라’

 

히이라기야 여관의 현재 6대 여주인인 니시무라 아케미((西村明美 68)씨는 교토에서 태어나 미국 노트르담 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후 가업을 잇고 있었습니다.

최고의 인텔리에다 현대적 감각을 갖춘 여주인이지만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자신을 낮추는 법이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그녀는 손님과 대화를 나눌 때 손님은 방에서 가장 상석에 모시고, 자신은 문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님의 얘기를 경청합니다.

또 손님이 외출했을 때 방에 들어가 꽃꽂이를 할 때를 보니까 방 가운데서 작업하지 않고 방의 가장 외진 자리에서 소리도 없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왜 그렇게 불편하게 사나 싶어서 “아무도 없는 방인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마음속에서부터 진정으로 손님을 잘 모시려면 손님이 안 계실 때도 그런 자세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답하더군요.

 

관련해서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197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독가스 호스를 입에 물고 자살을 했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그의 자살을 두고 온갖 억측이 난무했습니다.

과연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70이 넘은 노인이 왜 굳이 자살을 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결론이 났죠.

그 원인은 뜻밖에 히이라기야의 5대 여주인에 의해 밝혀집니다.

살아생전 야스나리는 주로 여관에서 작업을 했는데요.

대표작 ‘설국’도 니이가타 유자와의 여관에서 썼다고 전해지죠.

그런데  그의 교토 단골여관이 바로 히이라기야 여관이었습니다

 

당시 여주인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살 두 달 전에 가와바타 선생이 저희 여관에 투숙했었는데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후 많은 사람들로부터 모함과 질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보다 더 나은 작가가 일본에 많이 있는데 어떻게 당신이 그 상을 받았느냐?’는 것이었죠.

심약한 가와바타 선생은 그걸 견디기 힘들다고 털어 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자살 하셨죠.

이 말은 일본 조야에서 지금까지 야스나리의 자살에 관한 가장 신빙성 있는 증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자신의 심중을 털어놓을 정도로 대가에게 히이라기야의 존재는 특별했습니다.

 

히이라기야 여관의 종업원 교육, 이런 역사를 가진 히이라기야 여관이니 만큼 남다른 종업원 교육방침이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니시무라 아케미 사장은 “말해서 안 되는 것은 무관심, 말해서 되는 것은 당연한 것. 말하지 않아도 하는 것은 진심” 이라고 말합니다.

그 뜻을 물으니, “종업원이 진심을 가지고 일하는 게 좋은 여관”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말로 시켜서 하는 것은 손님에게 감동이 없다는 것이고 “손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죠.

실제로 종업원을 뽑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이 넉넉하게 길러졌는가, 교토의 전통문화 환경 속에서 일을 하고 싶어 하는가, 사람과의  만남을 즐기는 가” 등을 최우선  적으로  살펴본다고 합니다

거기에 외국 손님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어학실력은 물론이고, 품격 있게 기모노를 입는 법, 전통방식으로 음식을 서비스 하는 법 등도 빠뜨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제가 하루 묵으면서 체험을 해보니, 손님이 외출할 때는 마루 끝에 앉아 있다가 신발을 내어주고, 문간까지 나서더니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서서 배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귀가할 때는 얼른 뛰어나와 반갑게 맞은 후 신발을 챙겨 놓더군요.

마치 집에서 가장이 외출하고 돌아올 때 받는 최고의 환영인사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히이라기야 여관의 저녁상도 무척이나 유명합니다.

[가이세키]라고 해서 손님접대용 백반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모두 8번에 걸쳐 각기 다른 음식이 서비스 되는데 계절에 따라 또 그 메뉴를 달리한다고 합니다.

하나하나가 정성이 다해진 전통 요리다웠습니다.

, 이 아케미 사장과 인사를 하고 나서는데 여관의 현판에 이런 말이 적혀있습니다.

 

내자여귀(來者如歸) 한번 온 손님이 또 다시 오시도록 정성을 다해 모셔야 한다..

한번 히이라기야의 섬세한 정성을 맛본 손님이라면 다시 오지 않을 수 없겠죠.  

감사합니다.

 

-홍 하상(일본의 상도 저자)-

 


Posted by 더큰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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