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 신부에게 묻겠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항상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한 부부로서의 도리를 다 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맹세합니까?”
“예”
“예”
“신랑신부 모두 큰소리로 ‘예’’예’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제 신랑 신부가 그 일가 친척과 친지를 모신 자리에서
일생 동안 고락을 함께 할 부부가 될 것을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이에 주례는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빙그레 웃고 있는 신랑신부를 힐끗 바라보며 준비한 주례사를 낭독하였습니다.
사실 결혼식에서 주례는 형식이라 생각했습니다.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 외에 바라볼 대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느덧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도 자녀들이나 조카들의 결혼식이 대부분입니다.
세월의 증표 같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에 단순히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주례를 서게 되었습니다.
벌써 횟수를 제법 늘리고 말았습니다.

처음에 설 때보다야 훨씬 자연스럽지만 그래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준비한 원고를 보고, 또 보고 들여다 보아도 실수할까 봐 연신 원고를 봐야 했습니다.
아무도 관심이 없을 줄 알면서도 긴장하게 됩니다.
오래 전 첫 주례를 서던 날, 사진사가 주례를 찾습니다.

‘전데요?’
‘네? 주례가 왜 이렇게 젊어요?’

직원의 부탁으로 한참을 망설이다 할 수 없이 서게 된 주례라 당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사진사마저 ‘젊은 주례’운운하니 얼굴까지 빨개졌습니다.
어떻게 주례를 섰는지조차 기억에 없습니다.
세월과 경험이 특효약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자연스럽게 웃기는 일도 마다 않습니다.
직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둘이서 처음 만나 행복을 가꾸어 나가는 과정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자신들을 ‘잘 아는 사람이 주례를 서 주셨으면 한다’는 말로 부탁을 할 때 망설임이 누그러지고 맙니다.
아무쪼록 새 출발부터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권면을 합니다.

힘차게 행진하는 신랑신부의 앞날에 큰 축복과 행운이 깃도록 두 장이 하나로 붙어있는 화폐를 종류별로 선물했습니다.
‘둘이 하나’되라고~~~
이왕이면 붙어 있는 돈처럼 펑펑 돈이 들러붙어 부자가 될 것도 기원해 줍니다.*^-^*

사랑의 꽃이 활짝 피어나려면...

사랑은 공유되어야만 우리 스스로가 활짝 피어날 수 있다.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정체성과 상호성에 세 번째 차원, 아리스토텔레스는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그친, 한 가지를 보태고자 한다.
바로 이타성이다.

- 프레데릭 르누아르의《행복을 철학하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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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큰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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