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와 코치

모닝레터 2015. 10. 27. 12:55

"걸어가나뛰어가나차이가 안 나네?"

"도찐개찐이여!"

"그러게?"

"차라리 걷는 게 난 거 같어!"

"걸어그럼"

"그래도 마라톤인데~"

"마라톤이 어때서힘들면 걸어야지 뭐?"

"그니까걸으나 뛰나 같이 가네?"

"그래도 뛰면 쬐끔씩 앞서 가기는 하지~"

"그런가?"

"힘들면 천천히 가야지 서둔다고 몸이 빨라지나?"

"정말 힘들어!"

"힘들고 말고이게 무슨 장난인가?"

"하긴 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뭘?"

"그랴천천히 즐달혀!"

"그랴화이팅!"

 

달리다 보니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대화가 자연스럽기만 합니다.

대충 또래라 생각되는지 누구라 할 것 없이 말투가 바로 가벼워(?)집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대꾸할 따름입니다.

힘들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게 없습니다.

그래도 대충 비슷하니까 말이 가벼워집니다.

힘들기 시작하는 것이 반드시 30km를 지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도 때도 없이 힘든 사람은 그냥 힘듭니다.

그렇다 보니 걷는 사람들이 일찌감치 속출합니다.

 

사실 누군가 걷기 시작하면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은 안심(?)하고 덩달아 걷습니다.

‘동지가 생겼다’는 의미도 됩니다.

그런데 걷는 사람이나 뛰는 사람이나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하지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급수대가 나오면 모두가 하나 됩니다.

분명히 앞 서 뛰어간 것 같은데 걸어간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오고 맙니다.

 

'뛸 필요가 없네?'

'힘든데 걷지 뭐?'

'걸어도 똑같애!'

'그지걷자구!'

 

꼭 동료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웬지 같이 걸으면 부담이 확 줄어듭니다.

30km를 지나면서는 확연히 달라집니다.

앞서갈 사람들은 일찌감치 앞서 가버렸습니다.

뒤쳐진 사람들은 그야말로 도찐개찐 입니다.

아무리 달리려다 어쩔 수 없이 걸어도 급수 대 가면 다 만납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 역시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문제는 골인 점에서 아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멀찌감치 늦은 기차표를 예매했지만 그 시간마저 위태로울 것 같습니다.

사실은 표가 없어서 겨우 획득한 가족석을 비싸게 구매했습니다.

최소한 샤워라도 하고 가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어 보입니다.

열심히 발바닥에 힘을 싣습니다.

 

‘행여 무릎이라도 아플까?

‘힘들어 달리기를 못하지나 않을까?

 

이래저래 걱정 투성입니다.

다행히 마지막 스퍼트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주로 에서 자주 뵙던 70대 후반 어르신이 245회 완주 하는 날입니다.

워낙 천천히 뛰시는 분인데 옆에서 클럽 사람들이 같이 뛰어 드려서인지 살금살금 앞서 가십니다.

최소한 그 분보다야 쬐끔이라도 앞서야 했습니다.

스포츠 젤의 효과인지 그나마 막판 스퍼트가 가능했습니다.

그 분 바로 앞에 골인했습니다.

기차시간 아직 꽤 남았습니다.

아내가 안도의 숨을 쉽니다.

 

하얀 털의 충견을 누가 백구라 하던데 춘천 [가을의 전설]에서 백구(109)했습니다.

소아암 환자 돕기 기금마련 통장에 42,195원 입금했습니다.

이번에는 동참자가 몇 명 더 생길 것 같습니다.

예전의 [허드슨 미션통장번호 찍어놔야 할 것 같습니다.

 

신한은행

110-419-521906

정희순

 

우선 종아리 알 밴 것부터 빨리 회복해야겠습니다.

중앙 마라톤이 바로 코 앞입니다.*^-^*

 

선수와 코치

 

아무리 뛰어난

선수에게도 코치가 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에게도 멘토가 있습니다.

그들은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려주고,

보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보여주고,

내가 원치 않은 일을 하게 합니다.

 

조 정민의《사람이 선물이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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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큰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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