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꺼뚜 그려 줘!

“니껀 니가 해야지~

“난 못 그리구 넌 잘 그리잖어?

“그러다 선생님한테 걸리면 어떻게 해?

“아냐 괜찮아하나만 그려줘!

“안 된다니까~
“잘 안 그려도 돼!

“잘 안 그리고 잘 그리고가 어딨어?

“하나만 그려주라~

“에이알았어~

 

왕자파스라는 크레용이 있었습니다.

크레용인지 크레파스인지는 몰라도 그 때는 둘 다 같은 뜻으로 쓰였습니다.

크레파스라고 하면 좀 더 있어(?)보였습니다.*^-^*

미술대회는 항상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인근에서 열렸습니다.

학교가 외곽에 있었기 때문에 자주 오지 않는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야 했습니다.

당연히 오후 수업을 빠지고 참가하는 특별한 선수(?)였기 때문에 매우 우쭐댔습니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부러워 하기도 했지만 공식적(?)으로 수업을 빼먹는 것이 가장 부러운 대상이었습니다.

친구들의 부러움을 온몸에 받고 꽤 자주 미술대회에 나갔습니다.

그림을 잘 그린다기보다는 그냥 쉽게 그렸습니다.

그렇다고 매번 미술대회에 나가면 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심사를 하고 선별된 그림을 보면 아주 엉뚱한(?) 그림을 ‘잘 그렸다’고 평가를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별로였습니다.

언젠가부터 미술대회에 선수(?)로 뽑히지 않았습니다.

제 그림은 잘 그리는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방학숙제로 그림을 그려야 했습니다.

그깟 정도의 숙제는 물 말아 밥 먹는 거나 식은죽 먹기입니다.

그런데 친구 한 녀석이 자기 꺼도 그려달라고 조릅니다.

한껏 치켜 올려 세워주면서 아직 개학되기까지는 방학도 시작되기 전입니다.*^-^*

그 약속을 받고 방학을 해야 편안히 방학을 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긴 제 그림 그리면서 대충 한 장 더 그려주면 되었습니다.

‘그러마’고 약속을 하고 방학을 했습니다.

어차피 숙제는 개학 즈음에 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 기억은 남달랐습니다.

약속은 약속입니다.

대충 그려서 개학과 동시에 건넸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 처음 봅니다.

집에 전화도 없던 시절이지만 친구는 방학 내내 집 근처에 와서 그림 숙제를 기억하도록 인지시켜 주었습니다.

방학숙제 한 것을 가지고 잘 된 작품은 교실 뒤에 게시하여 칭찬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성껏 그린 그림보다 대충 그려준 친구 그림이 게시되었습니다.

당연히 그림 밑에 이름은 친구 이름이 붙었습니다.

선생님의 칭찬도 곁들여져 교실 전체 친구들이 큰 박수도 받았습니다.

정결하게 그린 그림은 못 그린 것이 되고대충 그린 그림은 잘 그린 그림이 되었습니다.

제 그림과 다르게 그린다고 삐뚤빼뚤 그려 주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생동감이 넘친다는 평가였습니다.

그 뒤로 다른 친구에게 그림 그려준 기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왕자파스는 비싸고 빨리 닳아서 잘 쓰지 못하던 시절입니다.

 

'48색 크레파스'를 갖고 싶었어요!

 

'나중에 돈 많이 벌면 48색 크레파스를 사서

'빡빡문지르면서 그림을 그려 봐야지!'

초등학교 1학년 미술 시간크레파스를

가져갈 수 없었던 가난한 소년은 그저 물끄러미

친구들이 도화지에 색칠하는 것을 바라봅니다.

훗날 CEO가 된 소년은 퇴직 후 그림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김 준희(그림수업인생수업)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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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큰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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