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모닝레터 2015. 9. 8. 11:24

“방앗간은 어딨었어요?”
“학교 옆에 있었지”
“지금 있는 방앗간은 아니잖아요?”
“그건 새로 지은 거고, 우리 꺼는 학교 담장 안 쪽에 있었지”
“나는 어디서 태어났어요?”
“옛날에는 지금 정문 양쪽으로 사택이 있었어!”
“여러 채 있었다면서요?”
“왼쪽으로 두 채, 오른 쪽으로 두 채 있었는데 우리 집은 왼쪽 첫 번째 집이었지”
“언제 헐린 거예요?”
“모르지~ 우리가 이사하고 학교 운동장이 확장되면서 헐렸겠지!”
“아쉽네요! 생가가 없어진 거잖아요?”
“길가에 있어서 창문 열면 바로 차 다니고 그랬지!”
“마차가 아니고요?”
“차 다녔어! 그 때도~”
“아주 옛날은 아니네요?”
“너 작은 형이 사과 먹으면서 같이 찍은 사진도 있었는데~”
“그거 어디 갔어요?”
“모르지~”
“옛날 사진을 잘 보관해야 하는데 다 버렸나 봐요?”
“작은 형수보고 찾아봐 달라고 해 봐!”

벌초를 끝내고 수타 자장면 집으로 갔습니다.
매년 벌초가 끝나면 산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작년부터 쉬운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그늘로 가면 벌레 떼와 씨름해야 하고, 산소 가장자리로 나오면 햇빛 때문에 더워서 너무 힘듭니다.
궁여지책으로 벌초를 모두 마치고 아예 산에서 내려와 간단하게 요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조카들까지 모두가 선호하는 자장면으로 정했습니다.
병은이가 제일 좋아합니다.
작년에 먹었던 집이 맛이 없다고 새로운 집을 찾았습니다.
보기에도 먹음직했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두 배입니다.*^-^*

힘들었는지 자장면을 다 먹고도 일어나기가 싫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내막(?)을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큰 형님뿐입니다.
저도 어려서 고향을 떠났고 그나마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보낸 큰 형님의 이야기가 보물 보따리입니다.
말로만 듣던 태어난 집 이야기로 끌고 갔습니다.
자세히 기억하는 큰 형님은 지금의 초등학교와 방앗간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이 옛날에는 방앗간을 했답니다.
나름 부자였나 봅니다.*^-^*
아버지가 교직에 계셔서 사는 집은 사택이었고, 할아버지가 면장을 하시면서 방앗간도 경영하셨다고 합니다.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이 전혀 기억에 없는 저는 이야기를 통해서만 탄생과 성장의 비밀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태어난 집이며, 방아를 찧어 꽤 여유가 있었다는 그 시절이 상상으로만 그려집니다.
아쉬운 것은 어디에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초등학교 요람 책을 손에 넣었지만 사택사진까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생전에 보시고 단체사진 속에서 아는 선생님들을 찾으시고는 신기해 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진기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흔적이라고는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부모님 같은 큰 형님의 기억이 생생한데 부쩍 많이 힘들어 하십니다.
정기적인 치료도 이제는 열심히 하지 않으십니다.
이번 벌초 때도 조카들과 제가 다 했습니다.
큰형님을 자주 뵈어야겠습니다.

부모님

부모님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꾸며주셨으니,
우리도 부모님의 남은 생애를 아름답게 꾸며드려야 한다.

- 생 텍쥐페리 -

Posted by 더큰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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